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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군산] 이희찬 휴먼요가 연구소장을 만나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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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피리, 코브라, 다이어트, 요기 다니엘, 옥주현, 한은정, 최윤영, 그리고 비디오 게임 속 캐릭터 달심까지. 필자의 박이부정한 지식수준으로 생각 할 수 있는 요가와 관련된 단어 혹은 인물들이다. 막연히 요가하면 떠오르는 그림을 그려본다면, 20대 초반의 모델 같은 여성이(물론 타이트한 검정 7부 레깅스차림이다) 어깨엔 돌돌 말린 보라색 요가매트가 들어있는 에코백을 둘러매고 손에는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혀있는 테이크아웃 아이스커피 잔을 들고 바쁜 일과 중 짬을 낸 듯 황급히 피트니스 센터로 들어가는 그림 정도였다.
 

2015년, 연말정산 때문에 울화통 터지는 대한민국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요가는 멋진 몸매를 갖고 있는 혹은 갖으려 노력하는 20대의 도시 여성들이 하는 운동’이라고. 필자 역시 지난 주 이희찬 소장을 만나기 전 까진 위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성산에 50년 된 집 멋지게 고쳐 사는 종합예술인 한 분계시니 인터뷰하라’는 발행인의 취재요청에 인터뷰 전 사전지식이라곤 ‘50년된 고택’과 ‘종합예술하는 분’ 두 가지 뿐이었다.
짧은 인사와 함께 받아든 이희찬 소장의 명함엔 ‘휴먼요가연구소 소장’이란 직함이 찍혀있었다. 그는 20대도 아니었고 물론 여자도 아니었다. 근데 요가를 한단다. 게다가 백발에 수염까지 멋지게 기른 얼핏 봐도 60은 넘어 보이는 분이 요가를 한단다. 놀라움 보단 호기심이 생겼다.
‘다시원’(多視院)이라 이름 붙인 성산에 위치한 이 소장의 고택은 1965년에 이 소장의 할아버지께서 지으셨다. ‘다시원’은 한국의 전통 가옥 양식에 일본 가옥 양식이 적절히 섞인 구조인데 일제강점기 이후라는 시대적 상황과 군산이라는 지역적 배경이 만들어낸 다른 지역에선 보기 힘든 독특하고 매력적인 건축물이다.
본채 앞엔 예전 쌀을 보관하던 창고와 일꾼들이 쉬던 사랑방까지 아직 잘 보존 돼있었다.  미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이 소장은 쌀 창고를 개조해 미술 작업실과 요가 수련원으로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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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채 옆과 뒤 처마 밑엔 집이 지어졌을 당시(1965년)에 사용하던 각종 농기구와 생활용품들이 마치 시간여행을 마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타임머신을 타려는 듯 줄지어 서있었다. 한 눈에도 논에 물 대는 용도로 보이는 물레모양의 ‘무자위’며 이 소장의 설명이 없었다면 아마도 끝내 용도를 몰랐을 탈곡기, 쌀을 보관하던 뒤주, 오래된 재봉틀과 다듬잇돌까지.  먼지를 툭툭 털면 당장이라도 사용이 가능해 보일만큼 잘 보존 돼있었다.
1948년생인 이희찬 휴먼요가연구소장은 우리나이로 올해 68세이다. 그가 처음 요가를 접한 건 중학교 2학년이었다. “어렸을 때 모친께서 신경성위하수로 저혈압과 심한 빈혈증으로 자주 쓰러지셨고 5남매의 장남인 저는 어머니를 간호해드려야 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서점에서 요가 책을 보게 되었는데 요가 동작 중에 누워서 하체를 위로 올려 넘기는 요가 쟁기자세가 위하수(위장이 밑으로 처짐)를 고친다는 설명을 보고 어머니 병을 고쳐드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요가 독학을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권유로 어머니도 요가를 시작하셨고 평생 생활화하셔서 그랬는지 장수하셨지요. 지금도 이때 구한 요가 책이 제 서재에 늘 저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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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머니 치료를 위해 요가를 시작한 이 소장이 본격적으로 요가의 세계로 들어선 건 1976년 오토바이사고 때문이었다. 당시 의사들은 청년 이희찬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가족들에게 얘기했고 실제 할아버지는 이 소장의 묏자리까지 알아볼 정도였다고 한다. 입원 중 그는 기독교와 요가에 더욱 심취 하였고 마침내 8개월의 긴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했다.
약과 주사가 듣지 않아 치료가 어려웠던 상황을 기적적으로 이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요가와 종교의 힘이었다고 이 소장은 얘기한다. 퇴원과 함께 시작한 본격적인 요가수련 중 그는 1980년 선친의 고향인 군산으로 내려와 사)한국요가협회 군산지부를 영화동에 개원하고 요가지도자의 삶을 시작한다.
“이후 영동과 나운동에서도 요가원을 운영 했어요. 2000년대 들어서 각종매체를 통해 요가가 널리 알려졌고 가수 옥주현이나 배우 한은정 같은 연예인들이 요가 비디오도 출시하고 아무튼 한마디로 요가 붐이 일었어요. 당시 나운동 회원 중에 점잖은 신사분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이 강희성 호원대 총장님 이셨어요. 총장님이 저를 좋게 보셨는지 어머님 병 고치려고 요가를 시작할 정도면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셨는지 그 인연으로 호원대에 한국 최초 4년제 요가학과를 신설하게 됐어요. 그게 2005년 이었죠. 2006년엔 전임교수로 발령받고 2007년부터 2012년 3월까지 요가학과장으로 역임했습니다. 호원대학교 작업치료학과에선 재활요가학 강의를 2014년 12월까지 하고 작년 말 퇴임했습니다. 처음 교수 생활 시작할 때 고민이 많았는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당시 요가 인기가 대단해서 수입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근데 전임교수를 하려면 학원은 포기해야하는 상항이었죠. 돈도 중요했지만 후배와 제자를 제대로 양성할 수 있는 교직을 택한 건 지금 생각해도 잘 한 일이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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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총론>, <어린이요가>, <유방암 이젠 두렵지않다!>, <요가총괄교본> 같은 각종 저서와 교본을 출간한 저자이기도 한 이 소장은 사단법인 한국요가협회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했는데 1985년부터 2007년까지 부회장 및 이사로 재임했고 마침내 2008년엔 제11대 한국요가협회장에 역임됐다. 이후 2010년 13대와 2012년 14대 회장까지 연임했다니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요가의 산 역사라 할 수 있겠다.
2004년엔 특허청에도 등록을 마친 ‘휴먼요가연구소’를 개소했고 2014년 호원대학교를 퇴임한 후엔 이곳 <다시원>에서 본격적으로 요가 지도자 교육과 요가연구와 수련에 매진하고 있다.
개인전도 열만큼 미술에도 재능이 있는 이 소장은 각종 요가 자세를 그린 그림을 필자에게 선물하였는데 그 솜씨가 범상치 않다.
이희찬 소장은 마지막으로 장시간 회사에서 근무하거나 학교에서 공부하는 독자들이 간단히 할 수 있는 요가 자세를 소개해 주었다.
장시간 목을 너무 숙이고 오래 앉아있다 보면 뇌로 통하는 목신경과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깁니다. 어깨와 목에 스트레스가 뭉치게 되고 허리는 오랜 습관으로 인한 압박으로 요통도 쌓여가고 머리에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서 능률은 저하되고, 신경은 예민해져 갑니다. 목을 통해서 손끝까지 내려오는 신경은 뇌신경이므로 먼저 자주 목을 전후좌우로 돌리고 지긋이 스트레칭해서 천천히 잘 풀어줍니다.
※ 목과 뇌 피로 풀어주기 (2번과 3번도 동작 1번처럼 같은 요령으로 합니다)
동작1: 의자에 허리를 바르게 세우고 앉아 양쪽 엄지손가락을 턱에 바칩니다. 숨을 마시고 내쉬면서 엄지로 턱을 가볍게 밀어서 고개를 들어줍니다. 이 상태에서 약 7초 멈춘 후 숨을 마시면서 돌아오고 숨을 다듬고 손을 풀어줍니다.                                                              
  

이희찬 소장과 함께한 2시간은 인터뷰였다기 보다는 미술, 건축, 역사, 의학, 체육, 무도, 철학, 종교, 인문학 그리고 요가에 관한 2시간으로 함축한 종합 인생수업을 듣고 온 기분이었다.
평생을 바쳐온 그의 요가에 대한 열정이 ‘다시원’에서 ‘휴먼요가연구소’에서 오롯이 완성되길 바란다.
휴먼요가연구소 소장 이희찬
군산시 임피면 보석암길 34-4
전화 063-453-5411
HP. 010-5650-2413
이메일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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